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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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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350,000원 목표

30,000원 후원

이름 조영희(여)
출생년도 1936년 (91세)
조영희 어르신은 6.25 전쟁 당시 양구·화천 12사단에서 대적 선전 방송 임무를 수행한 참전용사입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귀순을 권유하고 노래로 마음을 전하며 고지에서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때로는 방송 도중 눈물을 삼키며 목소리를 내시기도 했습니다.
전역을 앞두고 포탄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부상자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야전병원에서 간호를 도우셨던 경험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전역 후에는 결혼하여 자녀를 키우며 살아오셨지만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후유증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허리와 다리 수술 교정 의복 착용 신경과·정형외과 질환 등으로 지금도 거동이 불편하고 약에 의지하며 생활하고 계십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어르신께서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고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따뜻한 후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어르신의 든든한 힘이 되어주세요.
14.3%

350,000원 목표

50,000원 후원

이름 곽수인(남)
출생년도 1933년 (94세)
1933년생 곽수인 어르신은 1953년 스무 살의 나이에 조국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곽수인 어르신은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태릉 일대에 주둔한 공병부대에서 전투근무지원 업무를 수행하며 전쟁을 뒷받침하였습니다. 총을 들고 싸우지는 않았지만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전쟁은 끝났지만 어르신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배우자와는 사별하였고 슬하에 자녀도 없어 현재는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생활하고 계십니다. 현재 곽수인 어르신은 생계·의료·주거를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넉넉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연세가 들며 몸도 많이 불편해졌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외부 활동은 거의 어려운 상태이며 일상생활 전반을 요양보호사의 도움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로움과 불편함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 자신의 젊은 시절을 바쳤던 어르신께서 외롭고 힘든 노후를 보내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마음을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17.1%

350,000원 목표

60,000원 후원

이름 김기배(남)
출생년도 1927년 (100세)
김기배 어르신은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47년 2월 9일 철도경찰로 근무를 시작하며 국가의 질서를 지키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망설임 없이 전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김기배 어르신은 금강과 낙동강 전투를 비롯해 안강 전투 지리산 토벌작전 등 수많은 전투 지역을 오가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날들을 견뎌냈습니다. 포성이 멎은 뒤에도 어르신의 삶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 김기배 어르신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임대주택에서 홀로 지내고 계십니다. 가족 없이 혼자 생활하는 노년의 하루는 외롭고 버겁기만 합니다. 연세가 들며 건강도 크게 나빠져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특히 끼니를 챙기는 일조차 어르신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제대로 된 반찬 없이 식사를 해결하는 날이 많고 따뜻한 밥 한 끼가 간절한 날도 적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장 위험한 곳으로 향했던 분이 이제는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고 계십니다. 더 늦기 전에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김기배 어르신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21.4%

350,000원 목표

75,000원 후원

이름 권경열(여)
출생년도 1936년 (91세)
권경열 어르신은 6.25 전쟁 당시 불과 16세의 어린 나이에 입대하여 행정병으로 나라를 지켰습니다. 공문을 발송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일반 병사와 똑같이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의 경험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함께 임무를 수행하던 후배 행정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부검 입회 과정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했던 기억은 아직도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그 충격으로 결국 의가사 전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역 후 가정을 꾸리고 공장일과 사업으로 생계를 이어가셨지만 사회·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여러 차례 실패를 겪으셨습니다. 생활고와 더불어 심장병 청력 저하 관절 질환 등으로 지금도 보행기에 의지하며 힘겹게 생활하고 계십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권경열 어르신께서 건강을 지키며 지내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따뜻한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33.4%

350,000원 목표

117,000원 후원

이름 정수용(남)
출생년도 1932년 (95세)
정수용 어르신은 제9사단 소속으로 복무하며 1952년 10월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하였습니다. 이어 오성산 저격능선 전투에 참가하였고 300고지 주간 중대 탈환 전투에서는 중대원들 가운데 가장 앞에 서서 항공표지판을 등에 메고 전투의 선두에 나섰습니다. 포화 속에서 아군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몸을 방패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했던 생명을 걸어야만 가능한 임무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어르신은 홀로 생활하고 계십니다. 늘 단정한 모습으로 주변을 찾는 깔끔한 분이지만 곁에서 돌봐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식사 역시 혼자 해결하고 계시지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허용된 음식만 먹어야 하는 제한식이로 인해 반찬을 제대로 갖추기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 큰 걱정은 거주 문제입니다. 현재 살고 계신 곳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조만간 집을 비워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당장 옮겨갈 곳을 마련하기도 어렵고 다시 돌아올 형편도 되지 않아 어르신의 불안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젊은 날 전투의 가장 앞자리에 서서 조국을 지켜냈던 정수용 어르신은 이제 노년의 삶 앞에서 또 다른 싸움을 홀로 견디고 계십니다. 더 늦기 전에 외롭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르신께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손길이 필요합니다.
82.9%

350,000원 목표

290,000원 후원

이름 류명순(남)
출생년도 1928년 (99세)
류명순 어르신은 6.25 참전용사입니다. 1950년 7월 3사단 25연대에 입대하였습니다. 전쟁 중 부상을 입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습니다.
평소 거동이 힘들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서 신경통 관절염 골다공증 안과 질환 등 노인성 질환을 겪고 있습니다. 기초노령연금과 지자체 보훈 수당을 받으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집안일을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십니다. 일주일에 2번 요양보호사가 방문하여 집 안 청소 및 식사 준비를 해주고 있으나 요양보호사가 방문하지 않을 때는 아직 어려움이 큽니다.
어르신은 생활이 힘든 상황에서도 참전용사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힘쓴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내실 수 있도록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며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여러분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82.9%

350,000원 목표

290,000원 후원

이름 이선우(남)
출생년도 1930년 (97세)
한국전쟁 발발 후인 1950년 8월 15일 20살 청년 이선우 님은 조국과 가족을 위해 국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이후 미군 소속 24사단 21연대 1대대로 배치되어 신의주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국 공산당 군의 참전으로 후퇴하고 다시 한국군에 재배치되었습니다. 이후 1등 중사 수도사단 탱크장으로 중공군과 싸우다가 탱크에 투하된 수류탄 폭발로 손가락을 잃는 중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휴전 협정을 불과 13일을 앞둔 7월 14일 전투 중 북한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후 무려 56년이나 함경북도 경원군 온성 탄광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2006년 중국을 통해 탈북하여 한국에 입국하는데 성공했습니다. 20살의 빛나던 청년은 76살의
노인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는 기관지 및 심혈관 질환으로 심장에 기계를 넣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탄광에서의 강제노역은 이선우 님의 몸을 많이 망가트렸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숨이 차서 걷기가 힘들다고 하십니다.
이제 이선우 님에게 남은 날도 얼마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여러분의 사랑과 정성을 전달 해 주세요.
85.7%

350,000원 목표

300,000원 후원

이름 양진태(남)
출생년도 1933년 (94세)
양진태 어르신은 6.25 전쟁이 발발하던 해 10월 19세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징집이 되어 평안북도 개천 전투 등에 참가하였습니다.
열심히 복무하던 중 이듬해 5월 장티푸스가 발병하여 의가사
전역했습니다. 이후 1953년 9월 해병학교에 입대하여 이듬해
해병 소위로 임관하였고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월남전에
참전하였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청춘을 다 바친 어르신은
아내와 사별 후 상가 건물 2층 전셋집에서 홀로 지내고 계십니다.
생활자금은 자녀의 도움 없이 노령연금과
무공 영예수당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편안한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여러분이 어르신의 따뜻한 가족이 되어주세요.
94.3%

350,000원 목표

330,000원 후원

이름 김상병(남)
출생년도 1934년 (93세)
김상병 어르신은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6.25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안강지구전투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막았으며 UN군과 중공군이 맞서 싸운 장진호전투에서도 활약했습니다.
어르신은 두 전투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화랑무공훈장을 수여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있으며 언제나 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애국심으로 살고 계십니다.
어르신은 아들 둘과 딸이 하나 있지만 두 자녀는 다른 지역에서 거주합니다. 그래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장애가 있어서 함께 살고 있는 따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원비와 재활치료비 등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김상병 어르신은 연로해서 거동이 불편하고 쇠약한데 아내분도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남은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정부 생활 보조금과 구청의 참전 명예 수당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기에는 경제적으로 많이 힘겹습니다.
100%

350,000원 목표

350,000원 후원

이름 김종수(남)
출생년도 1932년 (95세)
참전용사 김종수 님은 6.25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 후인1950년 7월 고작 18살의 나이에 국군 8사단에 입대하여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참전 후 불과 4개월 만인 1951년 1월에 포로로 잡혀 북송되었습니다. 이후 평안남도 덕천시 운흥리에서 무려 40년 동안 노예처럼 탄광 생활을 하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2005년 8월 5일 목숨을 걸고 탈북하여 다시 대한민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북한과 공산당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지금도 포로로 잡히지 말고 괴뢰군과 싸울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김종수 님은 연세가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동년배의 다른 어르신들보다는 건강 상태가 양호한 편입니다. 하지만 탄광에서 일하던 당시 열악한 환경 탓에 기관지 질환을 앓게 되었고 심혈관 질환까지 와서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전쟁이라는 비극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김종수 님에게 여러분의 마음과 정성을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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