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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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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임용(남)
출생년도 1952년 (75세)
김임용 어르신의 부친이신 김붕준 선생은 1919년 서울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뒤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셨습니다. 이후 임시정부의 군무부장 의정원의원 국무원비서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가문이었지만 가족이 감당해야 했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까지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으로 고통을 겪었고 남은 것은 넉넉한 보상이 아닌 가난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김임용 어르신은 사춘기 시절 방황을 겪으며 배움의 기회를 놓쳤고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한 채 조부모님의 보상금에 의지해 살아야 했습니다. 혼기가 되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왔습니다. 슈퍼모델 대회와 자동차경주 대회 등을 주도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지만 오히려 재정적 부담은 더욱 커졌습니다. 현재는 부인과 함께 아들 집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습니다. 배우자는 퇴행성관절염이 심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진료비조차 넉넉히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는 형편입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가문의 후손이 오늘을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의 희생이 가난으로만 이어지지 않도록 이 가정에 따뜻한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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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류달훈(남)
출생년도 1935년 (92세)
1919년 안동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유후직 선생은 태극기와 격문을 직접 제작해 군중을 이끌었고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3년의 옥고를 치르며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지만 그 숭고한 희생이 후손의 삶까지 넉넉하게 지켜주지는 못했습니다. 유후직 선생의 자녀인 류달훈 님은 현재 한 요양병원에서 요양 중이며 독립유공자 유족연금을 받고 있으나 대부분이 입원비와 치료비로 사용되어 실제 생활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별도의 재산이나 부동산은 전혀 없고 거주 비용과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하면 남는 금액이 거의 없어 생계가 극히 불안정합니다. 그럼에도 연금을 수령하고 있다는 이유로 추가적인 기초생활 지원을 받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최소한의 치료와 생활조차 걱정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생활비와 의료비 지원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독립운동의 희생이 외로운 노후의 고통으로 남지 않도록 따뜻한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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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원 후원

이름 이세웅(남)
출생년도 1955년 (72세)
조국을 위해 도쿄 한복판에서 목숨을 건 의거를 단행한 이봉창 의사의 정신은 오늘 그의 종손 이세웅 씨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웅의 이름과는 달리 후손의 삶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친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어린 나이에 금속 세공 기술을 배워 가장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현재는 작은 공방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경기 침체와 일감 감소로 한 달 수입은 상당히 적어 임대료와 공과금 재료비를 제하고 나면 생활비조차 빠듯한 상황입니다. 고정적인 지원이나 별도의 연금도 충분치 않아 병원 진료나 예기치 못한 지출이 생기면 곧바로 생활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종조부의 뜻을 잊지 않겠다며 매년 일정 기간 무료로 금속 세공 기술을 가르치는 봉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난은 물려받았지만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신은 더 큰 유산”이라는 그의 말처럼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오늘을 버텨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독립 영웅의 후손이 최소한의 안정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과 정성을 보태주실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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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유장부(남)
출생년도 1938년 (89세)
유관순 열사의 후손인 유장부 어르신은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하였습니다. 큰아버지 유우석 선생님의 엄격한 가르침 아래에서 가난했지만 바른 신념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집안의 정신은 어르신의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습니다. 만 원짜리 사글세 방에서 신혼을 시작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약품 배달로 시작한 일은 곧 본사 근무로 이어졌고 30년을 한결같이 일하며 정년퇴직하였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책임감 있게 가족을 지켜왔습니다. 한때는 넉넉하지는 않아도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퇴직 이후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외면하지 못하는 성품 탓에 하나둘 손을 내밀다 보니 모아두었던 재산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의 사업 실패가 겹치면서 가정의 경제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대출까지 받아 겨우 거처를 마련했지만 빚은 여전히 어깨를 누르고 있습니다. 현재 아들은 직업 없이 어르신과 함께 생활하며 재기를 준비하고 있고 딸 역시 이혼 후 홀로 생계를 이어가며 빠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녀들 또한 여유가 없어 서로를 돕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을 견디며 살아왔고 평생을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을 책임졌던 한 가장이 이제는 노년의 불안 속에 서 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일조차 쉽지 않아 묵묵히 버티고 계신 어르신에게 더 늦기 전에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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